이번 문서의 목표: 이 파일을 다 읽으면 “PC가 안 켜져요”라는 한 문장을 다섯 가지 서로 다른 상태로 구분해 낼 수 있고, 각 상태에서 어떤 순서로 무엇을 배제해야 하는지 절차로 설명하고 수행할 수 있습니다.
”안 켜져요”는 다섯 가지 다른 말이다
정비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문장이 “컴퓨터가 안 켜져요”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다음 다섯 가지 중 어느 것인지 전혀 알려 주지 않습니다.
| 사용자의 표현 | 실제 상태 | 기술적 이름 |
|---|---|---|
| 아무 반응이 없어요 | 팬도 LED도 안 돎 | 전원 무반응 |
| 팬은 도는데 화면이 없어요 | 전원은 들어옴, 화면 신호 없음 | POST 실패 |
| 삐 소리가 나요 | POST가 오류를 알림 | 비프 코드 발생 |
| 켜졌다 꺼졌다 반복해요 | 전원이 유지되지 못함 | 전원 순환 |
| 로고는 뜨는데 그다음이 없어요 | POST는 통과, OS 로딩 실패 | 부팅 실패 — 10편 |
진단의 첫 걸음은 이 다섯 중 어느 것인지 확정하는 것입니다. 이 구분을 건너뛰면 엉뚱한 부품을 교체하게 됩니다. 실기 서술형에서도 “증상을 구체화한다”는 문장이 절차의 첫 줄로 요구됩니다.
쉽게 말하면: 진단이란 부품을 의심하기 전에 증상을 정확한 이름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1. 대분기 — 전원이 들어오는가
2. 전원 무반응 — 바깥부터 안쪽으로
전기가 흐르는 경로를 따라 콘센트에서 메인보드 쪽으로 순서대로 확인합니다. 가장 흔하고 가장 싼 원인부터 배제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콘센트와 멀티탭 확인
다른 기기를 같은 콘센트에 꽂아 전기가 들어오는지 확인합니다. 멀티탭 스위치가 꺼져 있는 경우가 실제로 매우 흔합니다.
전원 케이블 확인
케이블 양쪽(콘센트 쪽, 파워 쪽)이 끝까지 꽂혔는지 확인하고, 가능하면 정상 케이블로 교체해 봅니다.
파워 서플라이 스위치 확인
파워 뒷면의 I 와 O 스위치가 I(켜짐) 쪽인지 봅니다.
전압 선택 스위치 확인
일부 파워에는 115V 와 230V 를 고르는 빨간 슬라이드 스위치가 있습니다. 국내는 230V 여야 하며, 115V 로 되어 있으면 동작하지 않거나 손상됩니다.
케이스 전원 버튼과 전면 패널 배선 확인
메인보드의 F_PANEL 헤더에서 PWR_SW 두 핀을 드라이버 끝으로 순간 단락시켜 봅니다. 이때 전원이 들어오면 버튼이나 배선 불량이고, 그래도 안 들어오면 그 안쪽 문제입니다. 스위치는 극성이 없으므로 방향은 상관없습니다.
24핀·8핀 전원 커넥터 재장착
메인보드 24핀과 CPU 보조 8핀을 뽑았다가 딸깍 소리가 날 때까지 다시 꽂습니다. CPU 8핀 미연결은 전원 무반응 또는 즉시 꺼짐의 대표 원인입니다.
파워 단독 테스트
메인보드에서 24핀을 분리하고, 초록색 선(PS_ON) 핀과 아무 검은색 선(GND) 핀을 클립으로 연결한 뒤 파워 스위치를 켭니다. 파워 팬이 돌면 파워 자체는 살아 있는 것입니다. 전용 파워 테스터가 있으면 그것을 씁니다.
최소 구성 테스트
케이스에서 메인보드를 꺼내 절연된 판 위에 놓고 CPU·쿨러·메모리 1장·전원만 연결해 켭니다. 이때 켜지면 케이스 단락(메인보드가 케이스 금속에 닿아 합선)이 원인입니다. 지지 기둥(standoff)을 잘못된 위치에 박은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실기 감점 포인트: 이 절차를 건너뛰고 곧바로 “파워 불량으로 교체”라고 답하는 것. 실기 서술형은 배제 순서 자체를 채점합니다. 콘센트 → 케이블 → 스위치 → 전면 패널 → 커넥터 → 파워 단독 → 최소 구성의 순서를 쓰는 것이 점수입니다.
파워 서플라이의 대기 전력과 PS_ON 원리
파워는 전원 케이블만 꽂혀 있으면 스위치가 꺼진 상태여도 +5VSB(Standby, 대기)라는 전압을 메인보드에 계속 공급합니다. 메인보드는 이 대기 전력으로 전원 버튼 입력을 기다립니다.
버튼을 누르면 메인보드가 PS_ON 신호선을 접지(0V)로 끌어내리고, 파워는 그 신호를 보고 나머지 모든 전압(+12V, +5V, +3.3V)을 출력하기 시작합니다. 파워 단독 테스트에서 초록선과 검은선을 잇는 것은 이 PS_ON 신호를 사람이 손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 구조를 알면 왜 “전원 케이블을 뽑고 전원 버튼을 3초 누르라”는 지시가 있는지 이해됩니다. 대기 전력과 축전기에 남은 전하를 소진시켜 완전한 무전원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3. POST 실패 — 팬은 도는데 화면이 없다
POST(Power-On Self Test, 전원 인가 자체 검사)는 전원이 들어온 직후 BIOS가 CPU·메모리·그래픽 순으로 최소 부품을 점검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화면 출력조차 시작되지 않습니다.
화면이 없다는 것은 곧 “에러 메시지를 볼 방법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다른 감각을 씁니다.
| 단서 | 확인 방법 | 읽는 법 |
|---|---|---|
| 비프음 | 메인보드 스피커 소리 | 패턴별 오류 부위 |
| Q-LED / 디버그 LED | 보드 위 CPU·DRAM·VGA·BOOT LED | 켜진 채 멈춘 단계가 문제 부위 |
| POST 코드 | 두 자리 숫자 표시창 | 매뉴얼의 코드 표와 대조 |
| 팬 회전 양상 | 전속 회전 후 유지 여부 | 전속 고정은 초기화 실패 신호 |
비프 코드
메인보드에 스피커가 연결되어 있어야 들립니다. 요즘 케이스에는 스피커가 빠진 경우가 많으므로, 진단용 소형 스피커를 SPEAKER 헤더에 꽂는 것이 실무 요령입니다.
| BIOS 계열 | 패턴 | 의미 |
|---|---|---|
| AMI | 짧게 1회 | 정상 |
| AMI | 짧게 3회 | 메모리 오류 |
| AMI | 짧게 5회 | CPU 오류 |
| AMI | 짧게 8회 | 그래픽 메모리 오류 |
| 어워드 | 길게 1회 + 짧게 2회 | 그래픽 오류 |
| 어워드 | 길게 반복 | 메모리 미장착·접촉 불량 |
| 공통 | 소리 없음, 화면 없음 | 전원·CPU·보드 계통 |
정확한 코드는 보드 매뉴얼이 최종 기준입니다. 다만 긴 비프 반복은 메모리, 길게 한 번 + 짧게 두세 번은 그래픽이라는 큰 틀은 계열을 넘어 대체로 통합니다.
POST 실패 배제 절차
모니터 쪽부터 배제
모니터 전원이 켜져 있는지, 입력 소스(HDMI/DP)가 맞는지, 케이블이 외장 그래픽카드 단자에 꽂혔는지 확인합니다. 외장 그래픽이 있는데 메인보드 단자에 꽂으면 화면이 안 나옵니다. 이 실수는 실기 진단형 단골입니다.
메모리 재장착
전원을 완전히 차단하고 메모리를 뺐다가 다시 꽂습니다. 여러 장이면 한 장만 남기고 테스트합니다. 05편의 절차를 따릅니다.
그래픽카드 재장착
PCIe 슬롯에서 뺐다가 다시 꽂고, 보조 전원 6+2핀이 연결되었는지 확인합니다. 내장 그래픽이 있는 CPU라면 외장 카드를 아예 빼고 메인보드 단자로 화면이 나오는지 봅니다 — 나오면 그래픽카드 문제로 확정됩니다.
CMOS 초기화
잘못된 BIOS 설정(과도한 메모리 속도 등)으로 POST가 막힐 수 있습니다. 전원을 차단한 뒤 보드의 CLR_CMOS 점퍼를 몇 초간 옮기거나, 코인 전지(CR2032)를 5분간 빼 두었다 다시 넣습니다. 설정이 공장 기본값으로 돌아갑니다.
최소 구성 부팅
CPU·쿨러·메모리 1장·전원만 남기고 나머지를 전부 분리해 켭니다. 여기서 POST가 통과되면 분리했던 것을 하나씩 되꽂으며 범인을 찾습니다.
CMOS(Complementary Metal-Oxide-Semiconductor)는 BIOS 설정값과 시간을 담는 소형 메모리로, 전원이 꺼져도 코인 전지의 힘으로 내용을 유지합니다. 그래서 부팅할 때마다 시간이 초기화되고 BIOS 설정이 풀린다면, 답은 코인 전지 수명 소진입니다. 이 문항은 실기에 반복 출제됩니다.
4. 전원 순환 — 켜졌다 꺼졌다 반복
전원이 들어왔다가 몇 초 만에 꺼지고 다시 켜지는 증상입니다. 원인은 크게 셋입니다.
| 원인 | 근거 | 확인 |
|---|---|---|
| 과열 보호 동작 | CPU 쿨러 미밀착·팬 정지 | 쿨러 장착 상태, PC Health Status 온도 |
| 전원 용량 부족·불안정 | 고사양 그래픽 부착 시 발생 | 파워 정격 출력, +12V 전압 |
| 단락(합선) | 보드가 케이스 금속에 닿음 | 지지 기둥 위치, 최소 구성 테스트 |
과열 보호는 CPU가 위험 온도에 도달하면 스스로 전원을 끊는 안전장치입니다. 쿨러를 나사 한쪽만 조였거나, 써멀 그리스를 바르지 않았거나, 팬 전원을 연결하지 않았을 때 나타납니다. 04편의 체결 절차를 다시 확인하세요.
5. BIOS 진단 화면 읽기
화면이 나오는 상태라면 BIOS의 PC Health Status 에서 다음을 확인합니다.
| 항목 | 정상 범위(참고) | 벗어났을 때의 의미 |
|---|---|---|
| CPU Temperature | 유휴 시 대략 30–50도 | 60도 이상 유휴는 쿨링 불량 |
| CPU Fan Speed | 수백–수천 RPM | 0 이면 팬 정지 또는 헤더 미연결 |
+12V | 약 11.4–12.6V | 크게 낮으면 파워 노후·부하 과다 |
+5V | 약 4.75–5.25V | 벗어나면 파워 계통 점검 |
+3.3V | 약 3.14–3.47V | 벗어나면 파워 계통 점검 |
전압 허용 범위는 정격의 약 5퍼센트입니다. 예를 들어 +12V 라면 다음과 같이 계산됩니다.
- : 정격 전압(V)
- : 허용 오차 5퍼센트
따라서 허용 범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BIOS의 전압 표시는 참고값이므로, 값이 애매하면 파워 테스터나 멀티미터로 재는 것이 정확합니다.
6. 증상별 1순위 조치 요약
| 증상 | 1순위 | 2순위 | 3순위 |
|---|---|---|---|
| 완전 무반응 | 콘센트·케이블·스위치 | 전면 패널 단락 테스트 | 파워 단독 테스트 |
| 팬만 돌고 화면 없음 | 모니터 입력·케이블 위치 | 메모리 재장착 | 그래픽카드 재장착 |
| 긴 비프 반복 | 메모리 재장착 | 슬롯 변경 | 모듈 교체 |
| 길게 1회 + 짧게 2회 | 그래픽카드 재장착 | 보조 전원 확인 | 다른 슬롯·다른 카드 |
| 켜졌다 꺼짐 반복 | 쿨러 밀착·팬 회전 | 파워 용량 | 케이스 단락 |
| 부팅마다 시간 초기화 | 코인 전지 교체 | – | – |
| 부팅 시 CPU Fan Error | 팬을 CPU_FAN 에 연결 | 팬 회전 확인 | – |
7. 진단할 때 지켜야 할 두 가지 원칙
① 한 번에 하나만 바꾼다
메모리도 옮기고 그래픽도 빼고 CMOS도 초기화하면, 고쳐져도 원인을 모릅니다. 원인을 모르면 같은 고장이 재발했을 때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고, 실기 서술형에서는 이 원칙을 쓰지 않으면 감점됩니다.
② 싸고 흔한 것부터 배제한다
콘센트 확인은 0원이고 파워 교체는 수만 원입니다. 확률과 비용이 모두 낮은 쪽부터 지워 나가는 것이 진단의 경제학입니다.
핵심 정리
- “안 켜진다”는 전원 무반응·POST 실패·비프 발생·전원 순환·부팅 실패 다섯 가지로 먼저 구분합니다.
- 전원 무반응은 콘센트 → 케이블 → 파워 스위치·전압 선택 → 전면 패널 → 24핀과 CPU 8핀 → 파워 단독 → 최소 구성 순으로 배제합니다.
- 화면이 없을 때는 비프음, 디버그 LED, POST 코드가 유일한 단서이며 긴 비프 반복은 메모리를 먼저 의심합니다.
- 부팅할 때마다 시간과 BIOS 설정이 초기화되면 CMOS 코인 전지 수명이 원인입니다.
- 켜졌다 꺼짐이 반복되면 과열 보호, 전원 용량 부족, 케이스 단락 세 가지를 순서대로 확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