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독학사독학사 4단계국사09. 조선 전기의 건국과 통치 체제

이번 문서의 목표: 위화도 회군에서 조선 건국까지의 과정을 시간 순으로 정리하고, 의정부·6조·삼사를 축으로 한 조선의 관제를 구조적으로 이해하며, 훈구파와 대비되는 사림의 성장과 붕당 정치 초기 흐름을 사화의 흐름과 함께 파악한다.

왜 건국 과정과 관제를 함께 봐야 하는가

08편에서 고려의 통치 체제를 봤다면, 이 편은 그 체제가 무너지고 조선이라는 새 왕조의 통치 체제가 세워지는 과정을 다룬다. 독학사 4단계에서는 “조선의 관제가 왜 그렇게 짜였는가”를 건국 초기의 정치적 갈등(재상 중심이냐 왕권 중심이냐)과 연결해 묻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편은 건국 과정 → 관제 구조 → 사림의 성장이라는 순서로, 제도의 배경까지 함께 짚는다.

쉽게 말하면: 조선의 관제는 하루아침에 정해진 것이 아니라, 건국 초기 “왕이 힘을 더 가질 것인가, 신하들의 합의체가 힘을 더 가질 것인가”를 둘러싼 다툼의 결과로 자리 잡았다.

조선 건국 과정: 위화도 회군에서 문물 정비까지

  • 위화도 회군(1388년): 명(明)나라 요동 정벌을 위해 출병했던 이성계가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회군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이성계와 신진사대부 세력이 정치·군사적 실권을 장악하게 됐다.
  • 과전법 실시(1391년): 위화도 회군 이후 실권을 잡은 세력이 고려 말의 토지 제도 문란을 정리하며 실시한 토지 제도로, 조선 건국의 경제적 기반이 됐다. 세부 내용은 11편에서 조선 후기 제도와 함께 비교한다.
  • 조선 건국(1392년): 이성계가 왕위에 올라 조선을 건국했다.
  • 한양 천도(1394년): 새 왕조의 수도를 한양(오늘날의 서울)으로 옮겼다.
  • 왕자의 난(1398년, 1400년): 태조의 아들들 사이에서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으로, 그 결과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태종)이 실권을 잡고 이후 왕위에 올랐다.
  • 태종의 왕권 강화: 태종은 왕자의 난을 거치며 즉위한 만큼,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한 여러 조치를 시행했다.
  • 세종대 문물 정비: 태종이 다져 놓은 왕권의 기반 위에서, 세종대에는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한 각종 문물과 제도가 정비되며 조선 전기 통치 체제의 틀이 완성됐다.

통치 구조: 의정부·6조·삼사를 축으로

왕권과 신권의 균형을 담은 중앙 관제

조선의 중앙 관제는 크게 국정을 총괄하는 의정부(議政府), 실무를 나눠 맡는 6조(六曹), 왕권을 견제·감시하는 삼사(三司)로 나눌 수 있다.

  • 의정부: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의 3정승이 국정을 총괄하고 협의하는 최고 합의 기구다.
  • 6조: 이조(인사)·호조(재정)·예조(의례·외교·교육)·병조(군사)·형조(사법)·공조(토목·건설)로 구성되어 실무 행정을 나눠 맡았다.
  • 삼사: 사헌부(司憲府, 관리 감찰), 사간원(司諫院, 국왕에 대한 간쟁), 홍문관(弘文館, 경연과 학문 자문)으로 구성되어, 언론과 감찰을 통해 권력을 견제하는 기능을 했다. 삼사는 고위 관직은 아니었지만 여론과 명분을 다루는 청요직(淸要職, 명예롭고 중요하게 여겨진 관직)으로서 정치적 영향력이 컸다.

이 외에도 왕명의 출납(出納, 명령을 전달하고 보고를 올림)을 맡은 승정원(承政院), 국왕 직속의 중대 사법 기구인 의금부(義禁府)가 있었다.

기구역할
의정부3정승 합의로 국정 총괄
6조(이·호·예·병·형·공)실무 행정 집행
사헌부관리 감찰
사간원국왕에 대한 간쟁
홍문관경연·학문 자문
승정원왕명 출납(국왕 비서 기능)
의금부국왕 직속 중대 사법 기구

쉽게 말하면: 의정부는 “함께 결정하는 곳”, 6조는 “실제로 일하는 곳”, 삼사는 “왕과 신하 모두를 감시하고 잔소리하는 곳”이라고 이해하면 각 기구의 성격이 헷갈리지 않는다.

6조 직계제와 의정부서사제: 왕권과 신권의 줄다리기

같은 의정부-6조 구조라도, 실무 결재가 어디를 거치는가에 따라 왕권과 신권의 힘의 균형이 달라졌다. 이는 태종·세종·세조라는 서로 다른 왕대의 정치적 필요와 맞물려 있다.

  • 6조 직계제: 6조가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국왕에게 직접 업무를 보고하고 결재받는 방식이다. 국왕에게 실무 권한이 집중되므로 왕권 강화에 유리하다.
  • 의정부서사제(議政府署事制): 6조가 먼저 의정부에 업무를 올리고, 의정부의 심의를 거친 뒤 국왕에게 보고하는 방식이다. 의정부의 합의 기능이 커지므로 신권(재상권) 강화에 가까운 운영 방식이다.

왕권을 강력하게 다진 태종과, 이후 조카(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며 즉위한 세조는 각각 6조 직계제를 통해 왕권을 집중시키려 했고, 반대로 세종은 안정된 왕권을 바탕으로 의정부서사제를 운영해 신하들의 전문성과 합의를 국정에 반영하려 했다. 같은 관제라도 운영 방식에 따라 권력 구조의 무게중심이 달라진다는 점이 이 부분의 핵심 출제 포인트다.

지방 통치와 향촌 지배

조선은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그 아래에 부·목·군·현을 두어 지방관을 파견했다. 고려와 달리 조선은 속현(수령이 파견되지 않던 고려의 지방 단위)을 크게 줄이고 대부분의 군현에 수령을 파견해 중앙 집권을 강화했다. 지방에는 향촌 사족(士族, 지방의 유력 양반 가문)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유향소(留鄕所)가 있어 수령을 보좌하고 향촌 여론을 대변했으며, 중앙에서는 그 지역 출신 중앙 관료가 유향소를 통제하는 경재소(京在所) 제도를 함께 운영했다. 향촌 지배 장치의 세부 내용(향약 등)은 11편에서 조선 후기 신분 구조와 함께 더 깊이 다룬다.

사림의 성장과 붕당 정치의 시작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비

조선 건국과 초기 정치를 주도한 세력을 흔히 훈구파(勳舊派)라 부르는데, 이들은 조선 건국과 각종 정변 과정에서 공을 세워 중앙 정치의 요직과 대토지를 장악한 세력이다. 이에 비해 성종대를 전후해 중앙 정계에 새롭게 진출한 사림파(士林派)는 지방에서 성리학적 소양을 쌓으며 학문과 향촌 자치를 중시하던 세력으로, 주로 삼사(사헌부·사간원·홍문관)와 같은 언론 기구에 진출해 훈구파의 비리와 권력 독점을 비판하는 역할을 했다.

구분훈구파사림파
기반중앙 정계, 대토지 소유지방(향촌), 중소 지주
성장 계기조선 건국·각종 정변의 공신성종대 이후 언론 기구를 통한 중앙 진출
주요 진출 관직의정부·6조 등 고위 관직삼사 등 언론·감찰 기구
정치적 성격기존 권력 유지훈구 세력 비판, 성리학적 명분 중시

사화: 사림이 정치적 타격을 입은 네 차례 사건

사림이 중앙 정계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훈구파와의 충돌로 인해 여러 차례 큰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이를 사화(士禍, 선비들이 화를 입은 사건)라 부른다.

사화연도개요
무오사화1498년연산군사림 계열 학자가 쓴 역사 기록의 내용이 문제가 되어 사림 세력이 화를 입은 사건
갑자사화1504년연산군연산군의 생모 폐위 사건이 재조명되며 훈구·사림을 가리지 않고 관련자들이 화를 입은 사건
기묘사화1519년중종급진적 개혁을 추진하던 조광조 등 사림 세력이 훈구 세력의 반발로 축출된 사건
을사사화1545년명종왕실 외척 간의 권력 다툼과 얽혀 사림 세력이 다시 화를 입은 사건

네 차례 사화를 겪으면서도 사림은 서원과 향약을 기반으로 향촌에서 꾸준히 세력을 키워 나갔고, 결국 선조대에 이르러 중앙 정계의 주도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쉽게 말하면: 사림은 네 번이나 정치적으로 얻어맞았지만, 그때마다 지방(향촌)이라는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일어나 결국 중앙 정치의 주류가 됐다.

붕당 정치의 시작: 동인과 서인의 분당

선조대에 사림이 중앙 정계의 주도 세력이 되자, 이번에는 사림 내부에서 정치적 입장 차이에 따른 분화가 나타났다. 이를 붕당(朋黨, 정치적 입장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 부른다. 조선의 붕당 정치는 1575년(선조 8년), 인사(人事) 실무의 핵심 자리였던 이조전랑(吏曹銓郎)의 임명을 둘러싸고 심의겸김효원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면서 사림이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갈라진 것을 시작으로 본다.

이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한 관직 자리를 둘러싼 다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존 정치 세력(척신 정치와 가까웠던 인물들)과 신진 사림 세력 사이의 입장 차이가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붕당 정치가 이후 어떻게 전개되고 이념적으로 어떤 학파와 연결되는지는 12편에서 성리학 학파·사상과 함께 심화해 다룬다.

자주 틀리는 점

  • 6조 직계제와 의정부서사제를 단순히 “왕이 좋아한 제도”와 “신하가 좋아한 제도”로 뭉뚱그려 이해하기 쉽다. 정확히는 결재 경로의 차이로, 6조가 국왕에게 직접 보고하면 6조 직계제(왕권 강화), 의정부를 거쳐 보고하면 의정부서사제(신권 강화)라는 구조 자체를 기억해야 한다.
  • 훈구파와 사림파를 시기 구분 없이 “조선 전기의 관료”로 뭉쳐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훈구파는 건국·정변의 공신 세력, 사림파는 성종대 이후 지방 기반으로 성장한 세력이라는 등장 배경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 네 차례 사화의 순서와 왕을 뒤섞어 외우기 쉽다. 무오·갑자사화는 연산군, 기묘사화는 중종, 을사사화는 명종 대의 사건이라는 점을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 붕당의 시작을 성리학 이념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단정하는 경우가 있다. 1575년 동인·서인 분당은 이조전랑 임명을 둘러싼 심의겸·김효원의 갈등이 직접적 계기였으며, 학파와의 연결은 이후 점차 심화된 것이다.

핵심 정리

  • 조선은 위화도 회군(1388) → 과전법(1391) → 건국(1392) → 한양 천도(1394) → 왕자의 난(1398, 1400) → 태종의 왕권 강화 → 세종대 문물 정비의 흐름으로 체제를 갖췄다.
  • 중앙 관제는 의정부(합의·총괄)-6조(실무 행정)-삼사(감찰·간쟁·자문)를 축으로 하며, 6조 직계제(왕권 강화)와 의정부서사제(신권 강화)의 교체를 통해 왕권과 신권의 균형이 조정됐다.
  • 지방은 8도-부목군현 체제로 정비되고 대부분의 군현에 수령이 파견됐으며, 향촌에는 유향소·경재소를 통한 사족 자치와 중앙 통제가 함께 작동했다.
  • 사림파는 성종대 이후 삼사를 통해 성장했고, 무오·갑자·기묘·을사사화라는 네 차례 타격을 겪으면서도 향촌 기반으로 성장해 선조대에 주도 세력이 됐으며, 1575년 이조전랑 자리를 둘러싼 갈등으로 동인·서인 붕당 정치가 시작됐다.

마무리 복습

문제 14지선다
조선 건국 과정에서 이성계가 명나라 요동 정벌을 위해 출병했다가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회군한 사건은?
문제 24지선다
조선의 중앙 관제 중 관리 감찰을 담당한 기구는?
문제 34지선다
6조 직계제와 의정부서사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문제 44지선다
조선 전기 훈구파와 사림파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문제 54지선다
네 차례의 사화와 그것이 일어난 왕을 바르게 짝지은 것은?
문제 64지선다
1575년 이조전랑 임명을 둘러싼 갈등으로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는 계기가 된 두 인물은?
문제 74지선다
조선의 지방 통치 체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문제 84지선다
세종대의 통치 운영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참고 자료

Last updated on